임 윤(任 尹: 1502~1574) 조선왕조실록 기록
공은 연산 7년(1501)에 태어나 중종 29년(1534)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중종 33년 (1538)에 별시 문과(別試 文科)에 올랐으며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 홍주목사(洪州牧使), 황주목사(黃州牧使, 양주목사(楊州牧使)를 역임하였다. 공은 왕조실록에 10여 회 이상 등장하는데 그중 두 가지만 소개한다.
□ 명종 8년(1553) 10월 23일 기사
정원에 전교하였다.
청주 목사(淸州 牧使 목사) 이정(李楨), 홍주목사(洪州牧使)임 윤(任 尹), 한산 군수(韓山) 郡守), 김약묵(金若默), 옥천군수(沃川郡守) 고맹영(高孟英), 괴산군수(槐山郡守) 권소(權紹), 유신 현감(維新 縣監:충주의 강호(降號) 유경심(柳景深), 직산현감(稷山縣監) 정흡(鄭洽)이 폐단을 없애고 선정을 베푼다고 하니 매우 가상하다. 각기 향표리(鄕表裏:우리나라에서 짠 옷감의 겉감과 안찝) 1급(襲)을 주어 포장하는 뜻을 보이라.
□ 명종 16년(1561) 10월 5일 기사
강 욱(姜 昱)을 장례원 판결사로, 신사헌(愼思獻)을 성균관 사례로 송하(宋賀)를 시 강 원필 선으로, 이인(李認)을 문학으로, 임윤(任尹)을 황주목사(黃州牧使)로, 최응용(崔應龍)을 의주목사(義州牧使)로, 권응창(權應昌)을 남양 부사(南洋府使)로 삼았다.
공은 양주목사 엮임 후 상(賞)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중가(重加) 되었으나 사헌부(司憲府)
에서 가선(嘉善)에 상가(賞加)됨이 부당하다는 간언을 올렸으나 거절당하였다. 그러나 같은 날 사간원(司諫院) 관원들이 부당성을 거듭 아뢰니 가선대부 중가를 취소할 것을 윤허했음을 실록을 통해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