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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천임씨 14세 임열(任說 :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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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18회 작성일 24-01-1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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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천임씨 14세 임열(任說 : 1510)

 

 公은 죽애공파 비조(鼻祖)이다. 공은 중종 5(1510) 년에 태어나 중종 26(1531) 생원(生員), 진사(進士) 양시(兩試)에 합격하고 중종 28(1533)에 별시 문과(別試 文科)에 등과(登科) 하였으며 호당(湖堂)에 선임되었다. 중종 31(1536) 重試:기성 관료(당하관 이하)들만 응시하는 과거이며 10년에 한 번씩 치름)를 합격하고 중종 33(1538)에 탁영시(擢英試 : 중종 때 인재를 널리 구하기 위해 불시에 관리와 유생을 동시에 보였던 임시 과거)에 합격하였다. (족보의 기록은 발영시(拔英視)로 기록하고 있으나 발영시에는 세조 때 1466) 과거이므로 연대가 맞지 않는다. 국조 문과 방목에 의하면 의 과거 합격이 탁영시로 기록하고 있으니 족보의 기록이 오기인 것 같다.)

공은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 한성판윤(漢城判尹)에 이르렀으며 문정공(文靖 公)의 시호(諡號)를 받았다. 고은 실록에 100여 회 등장하는데 세 가지만 소개한다.

 

중종 37(319

종이쪽지에 임열(任說). 이황(李滉). 민전(閔筌). 김저() 등의 이름을 적어 정원에 내리면서 일렀다.

전에 농사가 더욱 흉작인 각 도에 어사를 보내어 적간(摘奸)하였는데 너무 일렀던 것 같다. 올해는 근고에 없던 흉년이다. 3월 보름 이후부터 5월 보름 이전까지가 흉년 구재 시책을 게을리한 까닭에 파직하였지만, 그 밖에도 구제 시책을 부지런하게 펴지 않은 수령은 한둘이 아니다. 4개 도가 더욱 심한데 시종(侍從)중에서 가려 보낼 것이니, 암행어사처럼 분주하게 돌아다니지 말 것이며 도종(徒從: 데리고 다니는 사람) 이나 음식은 되도록 간략하게 하라 험하고 외딴 마을까지 샅샅이 방문하여 떠도는 자는 몇 명이고 굶어 죽은 자는 몇 명이며, 진휼해서 목숨을 살린 자는 몇 명이고 굶주려서 죽게 된 자는 몇 명이며 어느 수령은 성심껏 구휼하고 어느 수령은 진휼을 게을리하는가 따위의 일을 탐문해서 온다면 내가 친히 본 것이나 다름없으며, 백성들 또한 나의 진념이 깊은 줄을 알 것이다. 이 사람들을 명초하여 말하라.”

 

명종 17(1562) 812

박충원을 한성부 좌윤으로, 고맹영을 형조 참의로, 윤의중을 홍문관 부제학으로, 유순선을 성균관 대사성으로, 박율을 병조 정랑으로, 이인을 홍문관 교리로, 유영길을 병조 좌랑으로, 이충작을 형조좌랑으로, 손여성을 성균관 전적으로, 임열(任說)을 평안도 관찰사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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